
1.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린다
그래, 100통만 채워 보자
1999년 나는 IMF가 한창일 때 졸업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력서를 100번 넣은 사람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그때는정말 남의 일 같았다. 졸업을 하고 나니 내 나이 24살. 경력은 없고 나이는 많았다. 처음에는 구인 광고만 보면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서류 전형 합격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취직이 쉽지 않았다. 합법적이라는 피라미드부터 시작해 비전공 분야까지 이력서를 안 넣어 본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당분간 이력서 쓰는 일을 중단하고 나름대로 취직이 안 되는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몇 가지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 게 있었다. 먼저 지방대 출신에 집도 지방인 데다 학점도 4점을 넘지 못했다. IMF라는 이유로 기업들의 횡포(일류 대학 선호)가 아주 심했던 때라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많은 상태였으니까. 무기력 정도가 극에 달했을 때쯤 그 동안 넣은 이력서 수를 세어 보았다. 자그마치 90여 통이 넘었다.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 100통만 채워 보자. 그 다음의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
이력서를 쓰기 앞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탓하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돋보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잣대로 보면 하잘 것 없는 이력일지 모르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나름대로 잘난 점이 하나쯤은 있게마련이다. 나는 그 점을 크게 부각시켰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척 적극적이고, 뭐든지 쉽게 배우는 편이었다. 그래서 시간만 주면 경력자 못지 않게 일을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외치고 다녔다. 면접관들은 자신 있는 모습을 좋아했고, 소극적인 사람보다는 적극적인 사람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취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가를파악해 소신 지원을 하는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은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피해만줄 뿐이다.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보아도 무조건 이력서를 넣었을 때보다 소신껏 적성에 맞는 분야에원서를 넣었을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취직한 지 6개월이 되어 간다. 취직 때문에너무 힘들어 할 필요 없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이 정말 맞다. 애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대가가주어진다. 쉬지 말고 도전하라. 마지막으로 꼭 이 한마디를 하고 싶다. 이력서 100통도 넣어 보지 않고 세상을 탓하지 마라!
취업? 튼튼한 두 다리와 철판 같은 얼굴이 있어야지
하다 못해 복권에 당첨된 사람도 복권을 사러 가는 노력이 있었기에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취업에임하는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끊임없는 두드림이 필수다. 우리가 알고있는 이름난 기업은 저마다 요구하는 인재상이 제각각이다. 실력, 외모, 성격, 학벌과 같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부분 중에 어떤 부분에 더 많은 점수가 책정될지 스스로의 어설프게 판단하는 일은절대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대단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두드리면 문은 열리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큰 기업들은 한 번에 1백여 명 안팎의 사람을 뽑는다. 물론 지원자는 2~3만 명일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적은 수의 인사과 직원들이 고작 2~3일만에 그 많은 지원 서류를 어떤 방법으로, 무슨 기준으로 추려낼까?
먼저 사진이다. 그 다음으로 서류인데 그 많은 서류를 다 읽을 것 같은가? 절대 아니다. 그러므로 무언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창시절에 학생회장, 동문회장, 서클회장을 했다는경력 사항도 좋고, 학장, 총장, 학부장 추천서도 덧붙이겠다는 욕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다 노력하는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기업에 대한 자신의 생각, 지식 아울러 나름대로의 연구 결과물 따위를 입사 원서에 동봉한다면 회사 쪽은 많은 호감을 가질 것이 틀림없다. 미리 겁을 먹지 말라.
내가 그런 대기업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학점이3.0도 채 안 되는 나도 50여 회사에 지원해서 8곳에 합격했다. 자신감과 패기는 취업하는 데 가장 든든한 경력이요, 빽이다. 취업은 직접 발로 뛰어 취업에 관한 자료나 정보를 얼마나 빨리 습득하느냐
에 따라 판가름난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취업은 어렵다. 기업은 1년에 고작 한두 번 사람을 뽑는다. 사람을 뽑는 기업이 개인 사정을 맞추지 않는다. 그러나, 가고 싶은 기업, 파트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 기회가 생길지는 두 다리와 철판 같은 얼굴이 말해 줄 것이다.
나는 한때 운동을 했고, 야구 선수로 대학을 들어갔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수업 한 번 안 들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3.0이 안 되는 학점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렇지만 나는 너무도 많은 노력으로 한 걸음씩 그들을 따라 잡았기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안정된 기업에서 인정받는 신입 사원으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커 가고 있다. 삼성이고 현대고 지방에도 다 있으니까 기죽지 말고 열심히들 해보기 바란다. 스스로 자신이 꼭 필요한 인재라는자신감과 노력으로 매진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이다.
행복을 위한 확실한 조건, 노동
야간 근로가 시작되었다. 12시간씩 일주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으레 그런 것이 되었고, 내가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버린 지 벌써 13년... 군 생활 6년하고 제대할 때 계급은 중사. 군에서는 중간 간부의 임무를 수행하고 부하를 이끌며 다소나마 권위도 부리고 때로는 태만하게 생활하다
제대했다. 제대 동기가 확실했기 때문에 한 달 만에 중소기업 현장 근로 사원으로 취직했다. 입사할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의식이나 주위의 편견 따위는 몰랐고, 직장을 가진 것에 대한 기쁨으로 만족감만 가지고 있었다. 현장 일을 하는 동안 단지 중사 제대라는,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은 간부 생활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걱정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소신이 있었기에 의식하지 않으려고 태연히 일을 해 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현장 기술을 한 달 만에 배우고 남들보다 일찍 기계 운전자가 되어 작업을 시작했다. 공고 기계과를졸업하고 군에서는 전차 부대에 근무했고, 그래서 기계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었기에 일하는 데는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그것도 노동자라는 내 직업적 신분이 가끔씩 나를 어렵게 만들곤 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익숙지 않은 근무 환경으로 몸이 무척 힘들었지만 적응하고 이겨내야한다는 오기와 주위의 시선과 우려를 없애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면서 조금씩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근로의 신분 차이, 일에 대한 노동의 대가, 사회적인 3D현상, 무엇 하나 만 족스럽지 못한 내 직장 생활은 점점 나를 나태하고 처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안양 독서회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만나게 되었다. 간호사, 소아마비, 조각가, 간 질환 환자 부부, 노동자를 위해 좋은 직장을 버리고 노동판을 돌아다니는 노동 운동가... 모두들 노동의 소중함을 힘주어 말하며 직업의 귀천을 의식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보다 못한 이가 많음을, 그리고 일하는 기쁨은 주위의 시선이 아니고 자신 안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다시금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다시 생각을 다그쳐 잡았다. 일은 다만 일이고, 일이 인격은 아니고 신분의 차이도 아니다. 노동은 인간에게 주어진 요소이고, 노동을 피하는 것은 두뇌를 게으르게 하여 주위 시선에 눈을 돌리게하며, 그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가치는 낮아진다고 만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부터 일에 대한 편견을조금씩 잊기 시작하며 13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현실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이지 미래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현실에 무조건 복종하면서 살자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뭔가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너무 멀리 있는 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헛되이 쓰지 말라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확실한 조건은 노동이다. 노동은 자유로운 노동이어야 한다. 일은 꼭 좋은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그 속에서 나를 잃어 버려서는 안 된다. 나는 나이고 일은 내가 사는 방식의 요소이지 귀천의 차이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일은 소중할 뿐이다.
2 .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의 새 출발
은행 대표 통역자에서 택시 드라이버로, 다시 외국계 은행에 스카우트되기까지어느 날 갑자기, 흔히 말하는 알거지가 된 적이 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던 사람도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굴복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내 앞의 현실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저 찍 소리 못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실 알거지라는 게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평소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직장에서도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나 부탁을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같은 사무실안에는 40이 되도록 결혼을 못한 직원이 있었는데 그는 1년 중 말짱한 정신으로 제 시간에 출근하는날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내게 보증을 서 달라고 했다.(미국 비자 발급보증이라나 뭐라나). 난 기꺼이 응해 주었고 약 2개월 정도가 지났다.어느 날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그의 모습과 동작이 여간 수상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퇴근을할 때까지 그는 나가지 않고 있었고, 그 다음날 그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나는 내 자리 뒤쪽 벽에 걸려 있는 CCTV의 앵글 초점이 내가 쓰는 단말기 자판과 화면에조준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가 나가고 난 뒤 내 비밀 번호를 이용해 내 자리에서 금융 전산망을 통해 다른 금융 기관에 현금을 이체했던 것이다. 내가 앞으로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 이상 벌어야 할 금액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가 이미 미국으로 도망한 뒤였다.
앞으로 내 처자식과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하늘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나는 퇴직금 한푼 받지 못한 채 파면 조치되었으며, 그나마 감방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알아야 할 정도였다. 세상에는 참으로 비열하고 야비하며 나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진정서를 내고 탄원서를 내고 언론사를 찾아가고 금융감독원을 찾아가도 모든 것이 허사였다. 그 누구도 자기 모가지를 내놓으면서까지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물론 이해는 갔다. 모두 현직에 있으니까... 이제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한단 말인가? 나이가 차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시 취직을 한다는 것도말처럼 쉽지 않았다.
장사를 하자니 밑천이 없고, 취직은 IMF 이후라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운전밖에 없으므로 택시 운전을 하려고 가까운 택시 운수 회사를 찾았다. 준비하는 데만 1개월이 걸렸고, 그 뒤에는 보조 기사로 대기하다 정기사가 빌 때면 빈차 한 대씩 배차 받아 운전했다. 그때 내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그래! 이 일이 결코 하찮은 일은 아니지만 내가 이 일을계속할 것도 아니다! 여기서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 나는 마음을 다잡아먹었다.그럭저럭 택시 기사 역할도 8개월쯤 했다. 생활 자체가 완전히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었다. 낮과 밤이바뀌면서 정말 힘들게 벌어도 고작 1백만 원 벌면 참 많이 번 것이었다. 내가 그 일을 하기까지는 사연이 없지도 않았지만 여러 계층의 사람과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어느 날 외국계 은행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사실 외국계 은행도 알게 모르게 감원 바람이 거센 것이 사실인데 조건이 상상을 초월하고 기절 초풍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거지 생활 1년 10개월 만에 다시 안정된 생활을 찾게 되는 순간이었다. 얼마뒤 무든 것이 정상이 되었다. 아니 예전보다도 훨씬 더 나아진 듯 싶었다. 건강을 잃어 본 사람만이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듯,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과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달았다. 끝으로 어려움에 처할수록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와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도록 하자. 그러면 새로운 희망이 솟아오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기업 사표 내고, 내 가치를 알아주는 곳을 찾아 내 일을 하러가다97년 6월 30일. 패기만만하게 2년 6개월 동안의 장교 생활을 마치고 대기업에 입사하여 해외 사업부로 발령 받았다. 합격자 10여 명 중 무역학 전공은 내가 유일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동기들도 부러워하는 본사 근무에 해외 사업부라니... 6개월 간 열심히 업무를 배웠고, 중동, 아프리카 담당이라 나름
대로 그쪽 지역의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6개월쯤 지나자 회사 사정이어려워 250명이 퇴사하게 되었다. 나는 설마 입사 6개월 된 신입을 자르는 회사가 있겠냐는 생각에대리와 과장님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퇴사자 이름에 내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결정했는지 모르지만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그 사람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윗사람들과 친한 사람들만 회사에 남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참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사회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짐을 정리하기 위해 회사에나간 날 부장이 부르더니 나는 계열사로 이동하는 선에서 잘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 번큰 일을 당하고 나니 언제 어떻게 다시 당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회사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들었다. 조직에 대한 강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이 (대)기업은 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나 자신에대한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커다란 집의 벽돌 한 장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 내가치를 알아주는 곳을 찾아 내 일을 하자. 나는 그 날로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컴퓨터와 관련한 일이 앞으로 유망한 직종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학원을 알아보고 6개월 간정보통신 교육을 받았다. 수료를 할 때는 당당히 1등을 했고, Y소프트랩이라는 한국형 ERP를 개발한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사하자마자 통합 정보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고, 회계 시스템의세무와 자금 시스템의 개발 담당이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인 만큼 프로젝트가 끝나자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들어왔다. 물론 지금 받고 있는 연봉도이전 회사에서 근무하는 입사 동기들보다 많다. 중요한 것은 미래가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고, 자기
능력을 인정받는 일을 하는 것이다. 기업 회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았으니 이젠 회계사 자격증을 따기업 회계 전산화에 대한 컨설팅을 하려고 한다. 인생은 끊임없는 변화인 것 같다. 도전하는 자에게,변화하려는 자에게 기회는 주어지기 마련이다.
3 .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신입 일기
잠깐 거울 본다고 혼내고, 신발 소리 크다고 혼내고
나는 2주 뒤면 졸업하는 지방의 한 여대생이다. 4학년 1학기부터 쓰기 시작한 이력서와 입사 지원서가 아마 50통은 넘을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아 어떤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1주일 동안의 교육과 3개월 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 지금은 입사한 지 2주 정도 되었다. 그런데 정말 끔찍하기만 하다. 출퇴근 시간은 왜 정해 놓았을까? 6시 30분이라고 정해 놓은 퇴근 시간은 8시가 훌쩍 넘는 것은 예사였고하루에 한 번씩 윗사람한테 혼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잠깐 거울 본다고 혼나고, 신발 소리가크다고 혼나고... 무슨 유치원도 아니고 소리는 얼마나 질러대는지, 아무리 상사라지만 부하 직원에게욕까지 해 가면서 혼내도 되는 것일까? 작은 회사도 아니고 한참 잘 나갈 때는 텔레비전 광고도 하고, 지금도 날마다 신문 광고까지 나가는 회사가 그 모양이었다. 정말 회사 다니기가 무섭고 끔찍하기까지 하다. 개인 회사가 원래 다 그런 건지, 아니면 여기가 특별한 경우인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 심정으로는 당장 그만 두고 싶지만 막상 갈 만한 곳도 없으니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공채로 들어갔는데 인턴 사원으로 등록하라니?
대졸 신입 공채로 입사하여 1주일 동안 합숙하면서 연수받고 그 뒤 1주일 동한 현장 실습을 받았다.
중견 상장 기업으로 여러 계열사도 가지고 있는 회사였는데, 담당자들은 어렵지만 희망이 있다고 여러 번 설명하고 확신을 보여주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계열사에 배치 받고 아침 7시 30분에 첫 출근을 했다. 웬걸, 회사에 도착하니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사람들은 7시 50분쯤에 왔다. 그런데 첫날 알았지만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굳이 정해져 있다면 윗분들 퇴근하고 나면이 퇴근 시간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원래 회사 생활이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자 관리부의 어떤 대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졸업 예정 증명서와 사진 1매 갖고고용 안정 센터 가서 인턴 사원 등록하고 오세요. 앗!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난 분명 대졸 공채 사원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연수받고 다니고 있는데 웬 인턴 사원 등록?(참고로 회사가 너무 어려워이렇게 편법을 써 정부 지원금을 받을 생각이란다. 진짜 참고로 말하면 회사 회장의 차와 이사급들이한 달에 쓰는 기름값만 해도 신입 사원 20~50명의 월급은 족히 되리라는 비공식적인 뒷얘기가 있다.)아, 이 절망감이여! 사기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4 . 떠나는 자의 발걸음은 가볍고 희망차야 한다
신입 숙제, 신규 자금 유치 1억 ! 억? 꼴까닥
나는 모 금융기관에 다녔다. 몇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 달 동안의 연수도 마쳤다. 이름도 있고,월급도 많았다.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융 기관에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선후배 사이의 군기도 확실했고, 너 나 좀 보자! 하며 화장실로 끌고 나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기본생활이 그랬으니 일을 배울 때도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많이 났다. 실수는 곧 죽음이라는 생각이들었을 정도였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견디어 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이 있었다. 내가 있던 지점에서는 나만 전문대 출신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름 있는 대학 출신들이었다. 그걸 가지고 또 트집을잡았다. 못 배워 그런다고... 그런 더럽고 아니꼬운 것도 다 견디어 내고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신입 사원들에게 신규 자금 유치라는 것이 본사에서 숙제로 내려왔다.
신규 계좌 50개에 금액은 1~2억 이상이었다. 그 숙제를 잘한 신입들은 입사한 지 1개월 만에 정식 사원이 되었다.(원래 연봉제였다.) 어쨌든 그런 평가를 망치고, 나는 점점 기가 죽었다. 날마다 만지는 돈이 돈 같지도 않고 씀씀이도 펑펑... 대우 채권 부도 사태 맞고, 증시도 안 좋고, 회사 사정도 안 좋았다. 결국 나는 3개월 수습 끝나고 정직원으로 전환할 즈음에 그만두고 말았다. 첫 직장을 다니는 동안스트레스로 살이 15Kg이나 쪘다. 동시에 빈혈도 생기고... 그렇게 마음 고생하는 곳은 다니기 싫었다.아무튼 자기 적성에 맞는지,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알아보고 취업하기 바란다. 급하다고 아무 곳이나
덜렁 들어가지 말고...칼 퇴근 하는 회사에 가고 싶어 사직서 제출했다
나는 대학을 10년 동안 다니고, 업계에서 알아주는 섬유 무역 회사에 입사한지 1년 된 사람이다. 회사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2천년도에 9천만 불이나 수출한 회사다. 우리가 다닐 때부터(유럽 파트)는 4천만 불 목표를 달성해 인센티브도 많이 받았다. 섬유 업계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라 생각하면 된다. 남자 대졸 초임인 경우 1800에 인센티브 100~200%라 괜찮은 편이다. 나는 생산 관리 일을한다. 웬만한 섬유 수출업체 남자 직원들이 하는 일이 생산관리이다. 사장이나 이사가 바이어로부터오다를 따오면 그 오다를 맡아 진행하는 게 내 임무다. 한마디로 옷 만드는 일의 전체 공정을 관리하
는 일이다. 원사 발주해서 편직, 염색, 가공 그리고 봉제와 콘테이너 선적까지...그런데 내가 사직서를 낸 이유를 간추리면, 섬유는 특히 내가 있는 니트(다이마루)분야는 거의 모든것이 사람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잘못된 제품이 나와 버린다. 그러다 보니해당 사람을 잘 다루면 내가 일을 잘하는 것이 되고 담당자가 사고를 치면 내가 일을 못하는 것이 된다. 참고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청 업체 사장이나 부장 과장들이며 나보다 나이도 많고경륜도 높은 사람들인데 내가 그들을 직무상 잘 다뤄야 했다. 그게 잘 안되었다. 또, 공장이라고 가보면 대부분 영세하고 가난하고 저학력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썼다. 작업이 안되면 화도 내야 하는데 나는 업무 사항보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와줄까 하는 마음이 앞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퇴근 시간이 없다. 1년 동안 8시 전에 퇴근한 게 10번도 안 된다. 대개 11시~12시쯤에 퇴근했다. 새벽 첫차 타고 퇴근해 본 적도 두 번 있었다. 그리고 하루에 거의 100~200Km를 다녔다.
업무 특성상 안산, 의정부, 동두천, 포천, 성수동을 누비고 다녔다. 뒷좌석에는 원단 싣고, 조금이라도일찍 퇴근하려고 차를 과속으로 몰아 보기도 하지만 회사에 돌아오면 대개는 9시에서 10시.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온갖 결재 서류들, 회람 그리고 갖고 온 원단 체크하고, 세탁기 돌리고, 다음날 공장에 작업 지시할 사항들 정리하고 나면 11시가 넘는 게 예사였다. 매일 야근에 운전을 하다 보니 체력도 떨어졌는데, 원단 둘러메고 경기도 일대를 헤매면서 때로는 저녁도 못 먹고 뛰어다녔다. 신혼생활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1년째 되는 날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사직서를냈다. 나는 정말 칼퇴근하는 회사에 가고 싶다. 내 생활을 갖고 싶다. 뭔가 배우고 싶다. 그래서 결국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5 . 나 라는 상품을 소개합니다
나 라는 상품을 소개하는 기회
올해 27살의 씩씩한 청년이다. 자세히 말하면 지방대 4학년 2학기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나는 외적인평가(토익, 학점, 자격증, 해외 연수)는 남보다 우수한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1학기 때부터남보다 발빠르게 취업 정보를 찾아서 뛰어다녔다는 적극성은 있다. 여기에다 나름대로 내가 가지고있는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몇 가지 옹골찬 시도를 해 보았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나는토익도 내세울 만한 점수가 아니었고 학점은 겨우 B학점 턱걸이 수준이었다. 그런데 면접에서는 다른사람들보다 약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면 자신의 외적인 평가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서류 전형에 합격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기 스스로를 하나의 상품이라 생각하고, 그 상품의 가치를 최대한 높여 상대방(기업)으로 하여금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때 자기 소개는 그상품에 대한 소개이므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상품과는 눈에 두드러진 차별성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사갈 것이 아닌가? 서류 전형에 합격하면 면접에 관해 최대한 정보를 긁어 모으라.그러면 없던 자신감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관련 회사 선배나 친구들을 만나 도움말을 부탁하라.
그러면 꼭 자신이 그 회사의 일원이라도 된 듯한 포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면접은 준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덜 떨리게 되고 자신감은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사람을 보는 것이지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자 하는 게 아니다여러 회사의 설명회나 상담회를 다니면서 많은 말을 들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역시 첫인상이었다. 많은 선배들이 면접의 70%는 첫인상이 결정짓는다고 했다. 처음 면접관을 마주할때 옷차림과 몸가짐, 눈빛이 승부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눈에 바로 보이는 단점은 면접에 있어서 독이다. 잘 생기지 못해도 깔끔한 외모와 복장은 면접관과 회사에 대한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또한, 면접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확인 과정이므로 면접관에게 책을 읽
듯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본이다.
나는 자기 소개를 조금 다른 방법으로 해 보았다. 일종의 자기 자랑 같은 것이었는데, 수많은 자기 소개서를 쓰면서 그러한 인물을 내 자신이라 믿게 하는, 어쩌면 마인드컨트롤 같은 것이었다. 평소에 언제 어디서나 나는 무엇을 잘한다. 뭐가 자신 있다.는 따위의 생각을 되풀이해서 되뇌었다. 얼마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스스로 최면에 걸리고 말았다.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 대한 자랑이 나온다. 전혀 어색함 없이 말이다. 사실 그렇게 잘나지도 못했는데... 또, 웃는 얼굴! 이건 어딜 가나 중요한 사항이지만 진짜 중요하다. 굳은 얼굴로는 아무리 대답을 잘해도 호감을 사기 힘들다. 표정 연습을
해라. 따라서 긴장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면접에 응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평소에 삶과 사회, 자신에 대한 나름의 뚜렷한 가치관을 세워 놓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그래야 황당하거나 어려운 질문이 나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기때문이다. 결국 면접이란 것은 사람을 보는 것이지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자 하는 게 아니다.(기술면 접 제외) 얼마나 자신 있게 말하는지, 눈빛이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살아 있는지, 꾸미지 않고 자신을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지, 일하고 싶은 의욕이나 입사에 대한 열의가 있는지 하는 것들에 대한 확실한 자기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면접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마인드 컨트롤을 잊지 말라.
6 . 나라는 작아도 일자리는 많다
언론사 취업을 바라는 이들에게중앙의 한 언론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다. 신문사 취업을 준비한다면 우선 본지(신문 매체)와 자매지(주,월간지)를 구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즈음 신문사들이 경쟁력 차원에서 자매지(시사지, 경제지, 교양지, 여성지 따위) 파트를 분사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법인(회사)이 다르다는 것이다. 언론사에 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특수한 신분이나 대우를 기대하고 취업을 준비하고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론사 종사자들이 갖던 프리미엄이라는 것이 과거에 비해 많이 희석되었고, 오히려 지금은철저한 자유 경쟁 상태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사 제도도 연봉계약직으로 바뀌는 추세에 있고제작국, 비제작국 할 것 없이 사내 감원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경쟁 무풍지대에 있던 쇠밥그릇개념은 현재 마구 깨지고 있는 상황이다. 옛날부터 답습해 오던 권위 의식이나, 언론사 특유의 타성도일부 사람들의 문제일 뿐, 보편 타당한 직업윤리를 가진 사람들이 지금은 더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언론사에는 일반 출판물 발행 부서(단행본), 인터넷을 응용해 사업하는 부서, 교육 사업팀, 문화 사업팀, 연구소, 자료실(데이터베이스 담당 부서), 조사실, 고객센터 등등 그밖에도 많은 부서가 있다. 적성에 맞고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부서를 찾아 각 신문사 별로 꼼꼼히 체크한다면 뜻밖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IMF시작과 동시에 졸업했던 내가 취업 때문에 이리저리 걱정하며 뛰어 다닐 때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무역회사에 대한 간단한 정리
현재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무역업 쪽으로 취업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 Overseas Sales(해외영업)
회사가 직접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자사 제품을 해외로 판매하는 것이다. 공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규모가 작지는 않으며 흔히 제조업이라 부른다. 조직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회사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해외영업, 통관, 네고로 나뉘어져 있다. 하부 종류로는 OEM영업, 기술영업, 부품영업, 영업관리 등이 있다.
* Corporation or Global(종합상사)
쉽게 말하면 중계무역이다. 제조업체 물건을 직접 구매해 이윤을 붙여 구매자에게 되판다. 삼각 무역이라고도 하는데 시장이 치열해지면서 요즘 종합상사들은 자사 브랜드를 붙여 영업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종합상사라면 수출 역군 식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과거 중소규모의 제조업체들이 해외 영업에 대한 정보와 인력이 모자라 상사들이 대리 영업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고,대기업들도 사업부 별로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 상사의 월급이 적은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다.
외국인 회사도 이와 같은 개념이라 알아들으면 된다. 쉽게 생각하면 소니가 한국에다 물건을 팔아보니 잘 팔려 아예 소니 코리아란 회사를 차린 것이다. 소니 코리아 영업사원들은 대리점 계약을 맺고,각지에 소니의 물건을 나누어주는 것이고, 실질적인 영업은 소니 코리아의 대리점 사람들이 한다. 한마디로 규모가 좀 큰 수입상인 셈이다. 종합상사라고 하면, 그래도 우리 나라 10대 기업 안에 드는,자사 고유의 브랜드화 되어 있는 회사만을 말한다. 참고로 종합상사는 일본 사람들이 비즈니스의 위험성을 분산하고자 만든 개념의 회사다.
* Trading company(일명 오퍼상)
옛날 종합 상사가 했던 일과 거의 비슷한 것을 한다. 단 종합상사는 막대한 자금 규모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직접 구매를 하나 영세한 오퍼상들은 그냥 소개비만 먹고 빠진다. 그러나 일정 규모의 무역회사는 직접 자사의 자금력을 가지고 구매해 영업하기도 한다. 보통 인바운드(Inbound)와 아웃바운드(Outbound)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둘 다 하는데도 있다. 수출 쪽은 제법 규모가 있어야 하지만 수입쪽은 거의 사장 혼자, 때로는 여직원 한 두 사람 데리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은 대개 ...코리아, ...인터내셔널, ...종합무역 따위이다. 이런 회사 사장들 대부분은 제조업체의 해외 영업부나 종합상사간부 출신 또는 과장이나 대리 출신들이 많다. 정말 한 순간만 실수하면 완전히 망해 주저앉기 딱 알맞은 그런 회사들이 많다고 생각하면 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