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물질의 시대’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한 뒤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국가 중의 하나로 꼽힌다. 각고의 노력으로 가난에서 탈출했고,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을 만큼 어느 정도 물질적 풍요도 이뤘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는 행복한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한국이 가정이나 직장, 국가에서 분쟁과 갈등이 만연하는 곳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화두(話頭)를 붙들고 경제 관료에서 선비 정신을 함양하는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겸 한국국학진흥원장으로 변신한 김병일(67) 전 기획예산처 장관을 찾아 ‘선비들의 고향’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지난 2월18일,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를 하루 앞둔 청명한 날 안동호는 햇빛에 반짝거렸지만, 산자락 끝에서 맞는 바람에는 아직 동장군의 매서움이 묻어났다.
# 경제 관료에서 선비문화수련원 수장으로 변신
김 이사장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끈 옛 경제기획원(EPB)에서 예산총괄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관료 중에서 김 이사장만큼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는 우선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등 상대 출신과 법대 출신이 우글거리는 옛 경제기획원에서는 드물게 대학에서 국사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조선 청백리 연구’로 논문을 썼을 만큼 일찍부터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는 경제 관료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뿌리회’ ‘역사모(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한국의 전통 문화와 선비 정신 등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 이사장의 활동보다 중요한 것은 관료 생활을 하면서 그가 보인 처신이다. 김 이사장은 30년이 넘는 관료 생활을 하면서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2005년 기획예산처 장관에서 퇴임할 때도 “능력있는 후배가 많은데 나 때문에 승진 등이 많이 정체돼 있다”며 “1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이제는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훌훌 자리를 털고 물러났다.
그런 측면에서 김 이사장의 삶은 ‘물러난 계곡(퇴계·退溪)’이라는 자호(自號·스스로 지은 호)를 짓고 고향으로 돌아가 도산서당을 짓고 독서와 수양, 저술에 전념하며 제자들을 길러낸 이황 선생의 그것과 닮아 있다.
# ‘봉천리 계민생(奉天理 啓民生)’
김 이사장을 만나러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종택(퇴계 종택) 대문에 붙어 있는 ‘봉천리 계민생(奉天理 啓民生·하늘의 이치를 받들고 백성의 삶을 일깨우다)’이라는 글귀와 조우했다. ‘퇴계 선생의 후손들은 세상과 동떨어진 듯 경상도 산속에 살면서도 위로는 하늘의 이치를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생활을 염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외경의 마음이 일었지만 금세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들이 깊은 산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들 오늘날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유학은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고리타분한 것’, ‘구시대적인 것’ 등으로 굳어져 버렸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과 마주 앉자마자 추궁이라도 하듯 “선비 정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 이사장은 “선비 정신의 핵심은 ‘충(忠)’과 ‘서(恕)’”라고 말했다. 그는 “충이라는 글자를 파자하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마음의 중심을 잡고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고, 서라는 글자를 파자하면 ‘같은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나뉘는데 ‘자기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같으니 양보하고, 하기 싫은 것을 남보다 먼저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현대적 의미에서 선비 정신의 핵심은 ‘겸손’과 ‘헌신’”이라고 덧붙였다.
# 다시, 선비 정신에 길을 묻다
김 이사장의 말을 듣고 나서도 요즘 세상에 그런 얘기를 귀담아들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런 선비 정신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기업 및 국가 경영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그러자 김 이사장이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를 지으며 요즘 자신이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하고 있는 강의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여러분, 성공하고 싶으시죠?”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장 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식’, ‘기술’, ‘태도’ 세 가지인데, 미국품질관리학회(ASQC)의 조사 결과 고객들이 떠나는 이유 중에서 가장 비율이 높은 것이 ‘직원의 태도(68%)’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결국 회사 생활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서는 지식이나 기술보다 태도가 훨씬 중요한데 선비 정신의 요체인 ‘겸손’과 ‘헌신’을 배우면 태도가 좋아지기 때문에 직장 생활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뜻이다.
김 이사장이 경영자에게 자주 드는 사례는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통념을 깨고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경주 최부자(경주 최씨)’의 성공 비결이다. 경주 최씨 가문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여서는 안 되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되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으라’는 가훈으로 유명하다. 김 이사장은 “경주 최부자가 400년 가까이 부를 이어간 이유는 선비 정신의 핵심인 겸손과 헌신을 자손 대대로 실천했기 때문”이라며 “선비 정신은 오늘날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정신적인 보고(寶庫)”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19세기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시대, 20세기는 산업 경쟁력을 확대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20세기의 경제력이라는 가치를 한층 더 성숙시키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며 “선비 정신은 21세기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에는 신사도 정신, 미국에는 프런티어(개척자) 정신, 일본에는 사무라이(무사도) 정신 등 수준 높은 정신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며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500년을 면면이 이어온 선비 정신의 재발견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나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의 용어법으로 선비 정신을 이야기한다”
김 이사장은 선비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500년 전 유학자의 ‘터미놀로지(terminology·용어법)’가 아니라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의 터미놀로지로 이야기한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지금도 경북 지역에는 옛날식으로 한학을 배운 뒤 평생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이사장이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과 한국국학진흥원장을 맡은 뒤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그가 500년 전 역사 속에 갇혀 버린 선비 정신에 현재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옛 선비들을 본받아 충(忠), 효(孝), 인(仁), 의(義)의 덕목을 따르라”고 말하는 대신 현대인이 고민하는 행복, 승진, 경영, 국가 전략 등을 선비 정신과 연결시켜 되살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한 것처럼 김 이사장은 한국의 선비 정신을 과거에서 끄집어내 오늘날에 접목시키는 ‘가교(架橋)’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사실상 사장돼 오다시피 한 선비 정신에 현재성을 부여해 재발견하는 작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김 이사장 취임 이후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을 찾는 사람의 수도 급증했다. 과거 수백명에 불과했던 수련생은 지난해에는 1만3389명으로 늘었고, 누적 수련생들도 4만2969명으로 급증했다. 올 2월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월중행사 계획표에는 전국의 학생뿐만 아니라 KT 신입사원 교육, 기업은행 지점장 교육, 부산교육연수원 교원 교육 등 기업체와 정부 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 해피 엔딩 사회를 꿈꾸며
김 이사장에게 다시 물었다. “선비 정신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각자 생활의 터전이 있는 곳에서 읽고, 쓰고, 배우면 되지 굳이 먼 안동까지 올 필요가 있는가?”라고. 그는 이 질문에 대해 “요즘 사람들은 무엇이든 너무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며 “무엇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느끼고 공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선비 정신을 공부하겠다는 목적만 갖고 있다면 굳이 안동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안동에 오면 선비 정신을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선비 정신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과 유적을 대면함으로써 선비 정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안동에서 선비 정신을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분으로 퇴계 이황 선생의 16대 종손 이근필옹과 이육사 선생의 유일한 혈육인 이옥비 여사 등을 꼽았다. 그는 “이근필옹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수련생들이 방문하면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꿇어앉은 채 맞이한다”며 “그는 선조인 퇴계 선생의 행적은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자신의 복을 짓는다는 뜻인 ‘예인조복(譽人造福)’이라는 글귀를 직접 써서 지난해에만 2만명이 넘는 수련생들에게 선물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옥비 여사는 수련생들이 찾아오면 갓 시집온 새색시가 시어른께 여쭙듯 겸손한 자세로 아버지 육사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정을 들려준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안동은 퇴계 이황 선생이 걷던 ‘예던길’ 등 선비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무수히 많다”며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선비 정신을 직접 느끼고 체험함으로써 자신의 현재 삶 속에 선비 정신을 투영시키는 것이야말로 선비 정신을 오늘날 되살릴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비 정신을 통해 향후 한국 사회가 ‘해피 엔딩(happy ending) 사회’로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꿈”이라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