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타고라스
- "모든 것은 숫자로 표현될 수 있다." 해석: 피타고라스는 숫자가 모든 것의 근본적인 원리를 나타낸다고 믿었습니다. 숫자는 자연의 조화와 규칙을 표현하며, 우주의 모든 현상과 존재는 숫자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아침의 첫 숨을 당신의 가장 큰 부와 행복으로 쓰라." 해석: 이 명언은 피타고라스의 도덕적인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를 시작할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행복이 결정된다고 믿었습니다. 아침에 긍정적인 태도와 선한 행동으로 시작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물은 생명의 원천이며, 정화의 역할을 한다." 해석: 피타고라스는 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물이 우주의 기본 원소이며, 정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흰 색은 순수함과 깨끗함을 상징한다." 해석: 피타고라스는 색깔에도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는 흰 색이 순수하고 깨끗한 상징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도덕적인 가치와 정신적인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의미하며, 올바른 행동과 순수한 마음을 추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달합니다.
- "침묵은 황금이다." 해석: 이 명언은 피타고라스가 침묵과 조용한 생활을 중요시했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침묵이 명상과 내면의 조화를 이루는 데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조용한 마음과 내면의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지혜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 "지식은 영혼의 음식이다." 해석: 피타고라스는 지식이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인 음식이라고 믿었습니다. 학습과 지식의 습득은 영혼을 풍요롭게 하며,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다." 해석: 이 명언은 피타고라스의 도덕적인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그는 자기 통제와 자기 극복이 성공과 성장의 핵심이라고 믿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고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공평함은 하나의 가장 완벽한 법칙이다." 해석: 피타고라스는 공평함과 정의가 사회의 기반을 이룬다고 믿었습니다. 공평함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대우를 함으로써 조화롭고 공정한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법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절제는 모든 덕을 이루는 기본이다." 해석: 피타고라스는 절제와 균형이 모든 덕과 미덕을 이루는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믿었습니다. 욕망을 통제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며, 옳은 행동과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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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만물의 원리는 수라고 주장하였다. 철학이라는 말을 맨 처음으로 사용하고 자신을 '철학자'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1]
생애
피타고라스는 보석 세공사 므네사르코스의 아들이며, 사모스 섬 출신이다. 아버지 므네사르코스는 사모스에 기근이 심했을 때 장사하러 왔다가 정착해 시민이 되었고 여기서 아들 피타고라스를 얻었던 것이다. 나중에 피타고라스는 튀레로 보내져서 점성술에 능했던 칼다이오스[2]들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거기서 그들의 이론을 받아들인 다음, 이오니아로 돌아가서 레스보스 섬의 페레퀴데스 밑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피타고라스는 사모스 섬으로 돌아와 헤르모다마스의 제자가 되었으나 헤르모다마스는 이미 고령이었고, 젊은 피타고라스는 배우고 싶은 열망에 고국을 등지고 여행을 떠나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민족의 비밀스런 가르침에도 입문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가 이집트에 머물러 있었을 때 시모스의 유력자 폴리크라테스가 편지를 통해 그를 이집트의 왕 아마시스에게 추천했다. 이곳에서 피타고라스는 이집트 말을 통달했다. 그 다음에 그는 크레타 섬으로 가서 종교인 에피메니데스와 함께 제우스가 태어나 자란 곳인 '이다의 동굴'을 탐험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는 내밀한 성소에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이를 통해 신들에 관한 은밀한 비전들을 배웠다. 이후 그가 40살이 되었을 때 다시 사모스 섬으로 돌아왔으나 조국이 폴리크라테스에 의해 참주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의 압제를 참고 견디는 것은 자유인으로서는 잘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는 이탈리아의 크로톤으로 떠났다.[3] 그곳에서 이탈리아의 그리스 정착민들을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세워 제자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공동체를 이루었다. 거의 300명에 달하는 그의 제자들은 나랏일을 최선으로 관리했기 때문에, 그 정치체제는 사실상 '최선자지배정'[4]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의 명성은 널리 퍼져서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그의 말을 들으려고 찾아왔다. 피타고라스의 밤 강의에는 무려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를 만나 보러 모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는 자격이라도 허락받으면, 그들은 무언가 큰 영예라도 만난 듯이 친지에게 편지를 썼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의 집을 '데메테르의 신전'이라 부르고, 그가 다니던 좁은 길을 '뮤즈의 성소'라 부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이탈리아 땅에 수많은 인물들을 키워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채식을 시켰다. 그는 윤회설을 주장했는데, 사람의 영혼이 동물에게도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기에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채식을 시켰던 것이었다. 다만 그는 콩을 삼가라고 명했는데, 콩은 영혼의 윤회에 방해될 뿐더러 소화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금하고, 술에 취하거나 포식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성행위는 건강에 좋지 않으니 절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는 "친구의 것은 공동의 것이고, 우정이란 동등함이다"라고 말하며, 그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의 재산들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 관리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제자들은 5년간 침묵을 지키고 스승의 강의를 듣기만 할 뿐, 승인받기까지는 결코 피타고라스를 보는 일이 없었다.
90세의 피타고라스는 제자들과 함께 밀론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입문의 자격이 없다고 판정받은 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질투심으로 말미암아 그 집에 불을 지르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크로톤의 시민들이 피타고라스가 참주를 수립할까봐 그걸 경계해 불을 질렀다고 한다. 가까스로 불타는 집에서 탈출한 피타고라스가 마주한 것은 넓은 콩밭이었다. 피타고라스는 그 콩밭을 가로질러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콩을 밟기보다는 차라리 이곳에서 붙잡히자. 말로만 떠드느니 죽임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고 한다.[5] 이렇게 해서 그는 추격자에게 잡혀 목이 베였다. 그리하여 그의 동지들 대부분도 살해당했는데 대략 40명에 달했다. 하지만 극소수는 도망갔고 그들이 피타고라스의 최후에 대해 증언하며 알려지게 되었다. 혹자는 피타고라스가 거기에서 도망쳐 나왔고, 이후 메타폰티온에 있었던 뮤즈의 여신들 신전으로 숨어들어 40일간 곡기를 끊은 뒤에 죽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반면 헤라클레이데스[6]는 피타고라스가 사모스 섬에서 이탈리아로 왔을 때, 피타고라스를 반대하던 크로톤의 귀족 퀼론[7]이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고는, 여기마저도 참주가 지배할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하여[8] 메타폰티온으로 물러가 더 이상 살기를 바라지 않고 곡기를 끊어 삶을 마쳤다고 전한다.
일화
피타고라스는 원래 전생에 헤르메스의 아들 아이탈리데스였다고 한다.[9] 아버지 헤르메스가 그에게 불사를 제외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기억을 살아서도 죽어서도 간직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그가 나중에 에우포르보스로 환생했을 때 그는 전생에 관한 기억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죽어 헤르모티모스로 태어났는데, 전생의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아폴론 신전으로 가서 메넬라오스가 바친 방패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헤르모티모스가 죽고 다시 어부 퓌로스가 되었고, 퓌로스가 죽자, 그는 마침내 피타고라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매우 위엄있어 보였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제자들은 그를 아폴론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또 언젠가 그의 맨몸이 일부 드러났을 때, 허벅지가 황금으로 된 것이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그가 네소스강을 건넜을 때, 그 강이 피타고라스에게 인사했다고도 한다.[10]
그는 영혼이 윤회하면서 각기 다른 동물과 엮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젠가 호되게 맞고 있는 강아지 곁을 지나가다가 불쌍히 여겨 이런 몇 마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만하라. 매질하지 마라. 내 친한 사람의 영혼이니까. 울음소리를 듣고 그를 알아보았다."
피타고라스는 최초로 '철학'을 말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플리우스의 참주 레온이 피타고라스에게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보자, 피타고라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 철학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축제와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상을 놓고 경쟁하기 위해서 축제에 가고, 어떤 사람들은 장사를 하러 가지만,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구경하는 사람들로서 참석한다. 그렇듯이 인생에서는 노예와 같은 사람들은 명성과 이득의 사냥꾼으로 자라지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철학자)들은 진리의 사냥꾼으로 자라게 된다." [11]
그는 번번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생각하라면서 훈계했다고 한다.
어디에서 나는 길을 벗어났는가?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또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을 나는 완수하지 못했는가?
사상
만물의 원리는 수
만물의 원리는 하나(monas)[12]이다. 그리고 하나에서 한정되지 않은 둘이 생긴다. 그 둘은 마치 질료인 것으로서, 원인이 되는 하나의 바탕에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와 한정되지 않은 둘에서 수들이 생긴다. 또 수들에서는 점들이 생긴다. 점들에서는 선들이, 선들에서는 평면들이 생긴다. 평면들에서는 입체들이 생긴다. 이것들에서는 감각이 되는 물체들이 생긴다. 그리고 감각이 되는 물체들의 원소들은 넷으로 불, 물, 흙, 공기 등이다. 이 원소들은 서로 변화해서 완전히 바뀌며, 이것들로부터 영혼이 있고 지성을 가진 구형이고 중심이 되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가 생겨나며, 지구 자체는 구형이며 두루두루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p.168~169
피타고라스의 사상은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구조와 형식 혹은 수학적 관계들을 바탕으로 세계를 파악한다. 그는 수학을 통해 자연의 "빗장을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통해 자신의 논리를 증명한다.
화성학은 수학과 음악처럼 비물질적인 것 간의 일치를 보여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수학이 물질적 사물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천체들의 원운동은 우주의 별과 태양도 모두 수학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학적 구조가 모든 사물의 근본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은 다른 논변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다. 사물들은 사라지지만 수학적 개념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수학은 자연 속에서 불변적인 것이다. 그리고 수학적 지식은 그 대상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지식이다. 나아가 수학적 지식의 확실성은 수학적 정리들이 논리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로부터도 나온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이중적 의미에서 합리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수적 증명의 형태로 합리적 논변들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실재가 모든 감각적 현상의 "근저에 놓여 있는" 수학적 형식들이라고 믿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감각이 아니라 이성(ratio)을 통해서 실재에 대한 지식을 획득한다고 믿었다.
이런 의미에서 피타고라스 학파는 자신들이 우주의 수수께기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합리적인 논변에서 더 나아가, 수학이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 신비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것은 합리주의적 수학에 기반을 둔 종교적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수학에서의 피타고라스
그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이 (직각을) 둘러싼 변들의 제곱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100마리의 황소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3]
흔히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그가 증명했다고 여겨지지만, 아쉽게도 해당 통설을 뒷받침할 만한 당대의 자료들이 없어 교차검증은 되지 않고 있다. 우선 신빙성 있는 초기 자료들을 살펴볼 때 확실한 것은 그가 혼의 전이설을 주장한 사람이며, 피타고라스적 삶의 방식을 만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수와 관련된 그의 글 중 초기 자료에 해당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단편으로 여겨지는 '피타고라스적 삶에 대하여' 뿐인데, 여기에서 '피타고라스 정리'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피타고라스 정리'에 대한 기록은 피타고라스의 후기자료 중 하나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저서,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서 언급된 아폴로도로스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이 직각을 둘러싼 각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황소 100마리를 제물로 바쳤다"라고 한다. 여기서 '발견했다'는 말을 '증명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긴 어렵다. 초기자료에서 이에 대한 근거가 될 만한 것이 없으며, 수학의 증명방법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5세기 말에서 4세기 초였기 때문. '발견했다'를 '증명없이 최초로 알아냈다'라고 보기도 어렵다. 피타고라스 이전의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람들도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나타내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14] 그렇기 때문에 피타고라스가 수학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보기엔 어렵지만,[15]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를 중심으로 그의 학파가 수학을 진리로 믿고 수학적 사실들을 전승해 온 공로까지 부정할 순 없다.
참고로 당시 그리스에서는 모든 수는 분수로 표현 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이 피타고라스 정리는 그 증명의 과정에서 그 이론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무리수의 존재를 알려주게 된다. 이 일로 인해 학파의 사람들이 무리수를 발견한 그를 죽였다는 얘기도 있다.[16]
평가
사상의 영역에서 피타고라스만큼 영향력이 큰 사람은 더 없을 터이다. 플라톤 사상처럼 보이던 점이 분석을 거치고 나면 실제로는 피타고라스 사상으로 드러난다. 지성에는 드러나지만 감각에 드러나지 않는, 순수하고 영원한 세계의 착상은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된다.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
피타고라스는 플라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나중에 르네상스 때는 데모크리토스와 함께 실험적 자연과학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결정적인 포인트는 실재가 수학의 언어로 구상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실재는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질적으로 다양한 사물이 아니라 측정 가능하고 숫자와 수학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이 경험하는 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세계의 측정 가능한 수학적 측면들을 강조하기 때문에 일종의 "이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전역학과 천문학을 성립시킴으로써 르네상스의 과학기술의 발전의 길을 닦은 것은, 바로 수학적 개념들과 모델들에 대한 이러한 "이상화된" 견해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여담
피타고라스 학파는 먼저 음악에서 음률의 수학적 원리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높은 도와 낮은 도의 음정 비율은 1:2, 솔과 도의 비율은 2:3, 파와 도는 3:4, 미와 도는 4:5, 파와 레는 5:6 등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를 두고 독특하게 분류했다. 1, 3, 6, 10 등을 삼각수, 1, 4, 9, 16 등을 사각수, 1, 5, 12, 22등을 오각수라고 불렀다.[17] 이것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대장간 앞을 지나가다가 장정들이 망치로 무쇠를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순정률과 피타고라스 음률을 발견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의 음률에서 나오는 화음은 기타에도 응용된다.
채식주의를 권하고 실천하면서도, 콩은 절대 먹지 말라고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띄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제1규율도 '콩을 먹지 말라'일 정도. 이에 대해서는 '단순히 콩을 싫어해서', 또는 '피타고라스가 콩 알레르기를 앓고 있어서' 등, 여러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콩을 수를 세는데에 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는 파바 콩(fava beans)을 먹고 피를 토하며 죽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파바 콩은 몸에서 활성산소를 만들어내는데 일부 지중해인은 유전적인 결함으로 인해 이를 잘 분해하지 못해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18]
피타고라스는 제자를 두 부류로 나누었다. 한 부류는 수업만 듣고 토론에는 참석하지 않는 일반 학생(아쿠스마틱스)으로, 그들에게는 심오한 지식을 전하지 않았다. 또 다른 부류는 그리스어로 마테마티코이라 부르며 피타고라스 학파의 진정한 회원이었다. 이 말은 나중에 수학을 뜻하는 라틴어 마테마티카(mathematica)로 발전했다.
피타고라스가 쓴 책은 전하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비밀결사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타인이나 타단체에게 함부로 저작을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피타고라스의 저작이 피타고라스 학파 밖으로 처음 유출된 것은 필롤라오스로부터 였다. 그는 피타고라스의 학설을 세상에 내놓았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한데, 그는 《교육에 대하여》, 《정치에 대하여》, 《자연에 대하여》 3권을 저술했다. 그 3권의 책을 플라톤이 거금을 주고 샀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제자 중 하나로 B.C 6세기~5세기에 활동한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여성 수학자로 생각되는 크로토네의 테아노(Θεανώ)가 있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피타고라스는 테아노와 결혼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식들을 최소 5명(아들들인 텔라우게스(Τηλαύγης)와 므네사르코스(Μνήσαρχος), 딸들인 다모(Δαμώ), 뮈이아(Μυῖα), 아리그노테(Ἀριγνώτη))를 두었다고 한다. 자식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 학자들이 되었다. 참고로 테아노는 그의 딸이라는 기록이나 피타고라스의 친구이자 제자인 메타폰툼의 브론티누스(Βροντῖνος)의 아내 혹은 딸이라는 기록[19]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자식 중 하나의 이름이 잘못 기록되었거나, 기록되지 않은 자식 중 하나의 이름이 어머니와 같았거나, 피타고라스와 브론티누스의 기록이 혼동되었거나, 피타고라스의 제자 중 테아노라는 이름을 쓴 사람이 최소 2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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